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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꼴찌들의 반란' 대구고 손경호 감독
  • 2019-03-08
  • 조회 : 267

[감독과의 대화]대구고 손경호 감독


‘꼴찌들의 반란’


영화 속 단골 스토리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들이 단번에 정상에 오르는 감동적인 이야기. 현실에서 이런 일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종교적 표현을 빌리자면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대구고등학 교 야구부가 그 주인공. 지난해 전국 대회 우승 만 3번(대통령기, 봉황기, 기장국제기). 이쯤 되 면 기적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터. 알만한 사람 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오 할렐루야.


2018년은 대구고의 해였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4강은 기본이고, 전국대회 3관왕을 휩쓸었다. 사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간 대구고는 라이 벌 경북고나 대구상원고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야구계 관계자 들이 대구고의 돌풍을 ‘꼴찌들의 반란’이라고 부른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 말에 불쾌감을 표시한 이가 있다. “꼴찌라고 하면 우리 선수들 자 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다. 다크호스의 반란으로 불러 달라.” 대구고 손경 호 감독의 말이다.


전국대회 3관왕의 훈련장은 시설부터 남다릅니다. 인근 지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최신식 구장이 갖춰져 있어요. 


좋은 정도가 아닙니다(웃음). 엄청나게 좋죠. 교장 선생님의 든든한 지원 아래 학교 동문회가 모두 나서 정성을 쏟아부었습니다.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구장 구조가 대칭이 아니라는 거? 외야 한 편에 ‘2.28 기념비’가 있어서 우측이 움푹 들어간 형태입니다. 그 점을 제외하면 (크게 웃으며) ‘우승기가 조금 더 필요하다’ 정도? 


지난해 대구고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전국대회 우승만 3번, 거기 다 준우승이 한 번입니다. 


재작년이었죠. 9월 봉황기 대회가 끝나자마자 다음 시즌을 준비에 들어 갔습니다. 수비 기본기 훈련부터 공격, 작전까지. 모든 걸 새롭게 재정립 했어요. 그런 과정에서 정말 중요했던 건 우리 선수의 ‘땀과 열정’이었습 니다. 선수, 지도자 할 것 없이 모두 훈련에 집중했어요. 선수들이 잘 따라 와 줬고, 훈련 성과 또한 좋아서 시즌 전부터 ‘올핸 해볼 만 하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황금사자기’ 결승이었죠. 


그렇습니다. 처음 결승에 오른 대회가 황 금사자기였습니다. 상대가 광주일고였는 데. 막상 붙어보니 경험이 많은 팀이라 상 대가 안 되더라고요. 속된 말로 완전히 깨 졌습니다.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이라고요?


예. ‘이게 경험이 돼서 앞으로 더 잘하겠구나’ 싶었던 거죠. 예전엔 덕수, 장충고 같은 팀을 만나면 기가 죽고 그랬는데(웃음). 그 후론 누굴 만나도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더라고요. 


예감이 적중했습니까.


(살며시 미소지으며) 그렇게 또 한 번 결승에 진출했어요. 그게 봉황기였는데 당일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경기가 하루 연기 된 거예요. 다음 날이 전국 단위 모의고사 날이라 학교에서 아무도 안 올 줄 알고 살 짝 긴장을 풀었는데, 다음 날 전교생이 다 와있는 게 아닙니까(웃음). 아차 싶더라고 요. 저도 부담감이 엄청났는데. 선수들은 오죽했겠어요. 그래서 애들 불러놓고 차근 차근 이야기했습니다. 


뭐라고요?


‘이미 올 시즌 이룰 건 다 이뤘다. 오늘 경 기는 마음 놓고 즐겨보자. 대신 삼진 먹더 라도 고개 숙이지마라. 투수들은 상대 타 자에게 안타 맞아도 기죽지 마라. 오늘 선 수 교체 기준은 그런 마음을 보고 결정 하 겠다’고 했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론 걱정이 많았는데 초반부터 대량 득점을 뽑 아내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든 생각이 ‘우리 팀이 이 정도로 올라왔구나’ 어느 정 도 안심이 되더라고요.


사실 객관적인 전력에선 경북고나 대구상원고에 비해 높은 평 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선수층이 두터운 것도 아니었고요. 


장, 단점이 있습니다. 개인 성향이 강한 선수들은 뭉치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어요. 올해도 ‘우승 0순위’란 팀들을 보면 1번부 터 9번까지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그런 점이 꼭 성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팀의 조화가 우선입니다. 팀 구성도 중요해요. 모두 장타자일 필요는 없습 니다. 콘택트 능력이 좋은 타자도 있어야 하고. 좋은 수비수, 좋 은 투수 역시 필요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팀을 위해 안타 하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선수가 돼야 한단 거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특히 저학년의 활약이 눈에 띄었어요. 


주전 라인업의 절반은 2학년이었습니다. 당시 2학년들 가운데 기본기가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 애초 목표는 전국체전 금메 달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저학년들 기량이 빨리 올라왔 고, 황금사자기 때 바로 사고를 쳐 버린 거죠. 그러면서 자신감 이 쌓였고, 이후 우승이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대회가 더 있었다면 좋은 흐름을 계속 이어갔을 거예요.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 주전 포수예요. 지난해 대구고 안방은 2 학년 현원회가 지켰습니다. 벌써 소문이 자자해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고마운 선수입니다. 2학 년임에도 주전 포수로 거의 전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도 힘들단 내색 한 번 하지 않더라고요. 이미 수비에선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입니다. 블로킹도 좋고, 송구도 정확하고. 원회가 앉아 있는 날엔 투수들도 마음 놓고 변화구를 던 질 수 있거든요. 여기다 타격 능력 또한 출중해요. 빠 른 공, 느린 공을 가리지 않습니다. 괜히 ‘제2의 양 의지’라고 하겠어요?


스카우트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저와 원회는 언젠간 만날 운명이었습니다(웃 음). 2년 전쯤, 2018년도 멤버를 구상하고 있 는데 마침 포수가 없더라고요. 이미 대구엔 쓸만한 포수가 바닥난 상태였고. 인근을 수 소문해 보니 글로벌 선진학교에 좋은 선수 가 있단 말을 듣곤 그 길로 곧장 달려갔 죠. 인연은 인연인 게, 하필 제가 간 날 홈 런을 친 거에요. 딱 한 경기 봤는데 ‘이 선 수는 무조건 데려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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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손 감독은 취임과 동시에 대구고를 180도 바꿔놨다. 제일 처 음 한  일은 조직력 강화. 당시 대구고는 해운대 백사장에 흩뿌 려진 모래알처럼 제각각으로 움직였다. 손 감독의 야구관은 크 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소통이고, 두 번째는 시스템. 그리고 성 적보단 선수들의 마음부터 헤아리는 지도자가 되려 했다. 그런 까닭에 선수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속내를 살폈다. 또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선수 기용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록에 따라 객관적인 라인업을 운영한 것이다.    


올해도 대구고를 ‘최강’으로 꼽는 야구인들이 많습니다. 


(두 눈이 둥그레지며) 최강이요? 혹시 다른 팀 이야기하시는 거 아닙니까(웃음). 그런 평가는 정말 감사하지만, 아직 부족 한 게 많습니다. 3, 4년 후에도 정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 력해야죠. 


너무 겸손한 거 아닙니까.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지난해 호성적이 자만 심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말이죠. 방심은 최고의 적입니다. ‘하면 된다’로 받아들여야지 ‘당연히 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너지고 말 겁니다. 


대구고 감독직을 수락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을 듯해요. 당시 대구고는 전력 면에서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고민이 많았죠(웃음). 비단 실력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상 중에서 16년간 일하면서 쏟아부은 열정과 애정이 남달랐거든 요. 더군다나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상태라 모든 게 편했습 니다. 학생 선수라면 누구나 오고 싶어 할 정도였고요. 제가 부 임할 때만 해도 대구고보단 경북고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았어 요. 그러면서 ‘약간의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오기요?


제가 대구고 출신입니다. 모교가 다른 학교에 비해 평가절하되 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그 오기 하나로 감독직을 수락했습니다. 


‘우승팀’ 감독의 ‘꼴찌 팀’ 부임. 재미있는 이야기 아닙니까. 


16년 전, 경상중 감독으로 부임할 때도 꼴찌였습니다. 제가 경 상중에 다닐 땐 멤버가 정말 좋았거든요. 이정훈, 강기웅, 김용 국, 이종두 같은 선배들이 학교를 전국 최강으로 이끌었습니 다. 그런데 선배들이 떠나고부턴 20년간 우승 한 번을 못 했던 거예요. 그간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정말 다행히 제가 경상중 을 맡고 16년간 11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각오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전 애초에 진단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대구고에 올 때도 마찬 가지였고요. 팀을 맡으면 선수들에게 ‘지금부터 무조건 이긴 다’는 각오를 심어주려고 해요. 요즘 대구고 선수들을 한 번 유 심히 보세요. 한 점 뒤진 9회 말 2스트라이크 3볼 상황에서도 절대 진단 생각은 하지 않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라.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학생 선수들에겐 꼭 필요한 자세예요. 전 9회가 끝나기 전까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붙어보는 거 죠. 공이 빠져서 한참을 날아가도, 끝까지 잡으려고 노력한다 면 언젠간 잡게 됩니다. 어떤 선수는 못 잡겠다고 생각한 탓인 지 5m 전부터 속도를 낮춰요. 그러면 승리도 함께 늦어지는 거 죠. 제가 여기 오자마자 걸어놓은 표어가 ‘전력 투구, 전력 질주’입니다. 적어도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 있는 선수라 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이가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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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지도자 손경호 

“선수들과 함께 완주하는 지도자 될 것”


선수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프로에선 2년 정도 1군에 있었어요. 그 외엔 대부분 2군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 어릴 때부터 재능이 특출난 선수는 아 니었거든요. 악착같이 노력해서 프로까지 간 타입이었죠. 역시 프로의 벽은 높더라고요. 그걸 뛰어 넘어보려고 매일 밤낮으로 훈련하다 보니 어느 순간 피로 골절이 왔고, 자연스럽게 은퇴 로 이어졌습니다. 


제자들을 보면 현역 시절 느꼈던 아쉬움이 떠오를 듯합니다.


아무래도 눈에 띄는 선수보단 감춰진 선수 쪽에 눈길이 가요. 표현은 자주 못 하지만, 그래도 늘 신경 쓰고 있단 느낌을 주 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나마 선수들이 최대한 스 트레스 받지 않는 쪽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구장에서라도 마음 편히 야구할 수 있도록 말이죠. 참 재미있는 게 몸의 부상은 치 료할 수 있어도, 마음 속 부상으로 쉽게 치료할 수 없더라고요. 결국, 소통이었습니다. 다양한 대화를 통해 함께 완주할 방법 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완주요?


모든 선수가 원하는 팀에 가는 건 아니잖아요. 꿈을 이루지 못 한 선수들도 나오게 마련입니다. 간혹 그런 선수들 가운데 일 찍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감독으로서 늘 아 쉽고, 미안한 부분이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 야구 쪽에서 종사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고 해요. 


고교 감독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습니다.


그럴수록 더 냉정해져야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가 돼 야 선수들에게도 할 말이 생기는 거잖아요. 지난 시즌엔 선수 들에게 무한 경쟁을 선언했습니다. 주전 선수를 정할 때 공식 적인 기록에 의해서만 뽑겠다고요. 지금도 숙소에 대문짝만하 게 붙여놨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선수뿐만이 아닙니다. 학부모들에게도 공표했죠. 10경기마다 기록을 업데이트해서 숙소에 붙여놓겠다고요. 지금도 그 기준 에 따라 객관적인 선수 기용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 료가 있으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거든요. 선수들에게 당당해지 려면 저부터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지난해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습니다.  


선수 시절엔 상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올해 그 한을 다 이뤘습니다.


수상 소감도 남달랐어요. 가장 먼저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진심이 느껴지더군요.    


단상에 서니 우리 선수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간 함 께 흘린 땀과 노력을 생각하니 울컥하더라고요. 모든 훈련을 전국 대회 결승처럼 뛰어준 선수들에게 정말 고마웠습니다. 선수들이 만들어준 상이라고 생각해요.  


올 시즌, 대구고의 전관왕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소릴 자주 듣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하는 이야 기가 있어요. ‘우승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란 거죠. 선수 들 컨디션 문제도 있고, 언제 부상자가 나올지 모르잖아요. 제 겐 전관왕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뮙니까.


선수단 전체가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혹시 압니까. 정말 후회 없이 뛰다 보면 또 좋은 결과가 따라올지(웃음).